“우리 조직이 혁신에 실패하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요?”
맥킨지의 보고서는 조직의 혁신을 가로막는 세 가지 핵심적인 두려움을 지적했다. 개인 경력에 대한 두려움, 불확실성과 통제력 상실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비판에 대한 두려움이다. 흥미로운 점은 혁신을 선도하는 기업들은 이러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데 훨씬 뛰어나다는 것이다. 실제로 선도적인 혁신 기업의 직원들은 다른 기업에 비해 11배 더 많이 도전적인 시도를 장려하며, 5배 더 많이 실험정신을 권장받는다고 응답했다. 또한 이들 기업은 비판적 의견을 개진하는 것이 3배 더 수월하다고 밝혔다고 한다.
이러한 혁신 기업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Samantha Deffler 외 연구진의 연구 결과에서 그 해답을 찾아보자 한다. 이 연구에서 ‘지적 겸손(Intellectual Humility)’이라는 특성이 조직의 혁신 역량과 의사결정 품질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지적 겸손이란 자신의 신념이나 판단이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태도를 말한다.
“우리는 이미 충분히 검토했습니다. 제 판단이 확실합니다”라는 태도가 아닌,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겸손한 자세가 오히려 더 정확한 판단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지적겸손과 의사결정의 상관관계
지적 겸손과 의사결정 능력의 관계를 입증하기 위해 연구진은 흥미로운 실험을 설계했다. 사람들이 얼마나 정확하게 정보를 처리하고,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지를 객관적으로 측정하고자 했다. 연구팀은 157명의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지적 겸손을 측정하고, 이들의 정보 처리 능력을 비교했다. 특히 신호탐지이론(Signal Detection Theory)이라는 심리학적 분석 방법을 활용했는데, 이는 사람들이 ‘신호'(실제로 있는 정보)와 ‘노이즈'(없는 정보)를 얼마나 정확하게 구별하는지 측정하는 방법이다. 쉽게 말해, “이전에 본 정보”와 “처음 보는 정보”를 얼마나 정확하게 구별해내는지를 확인한 것이다.
연구 결과는 흥미로웠다. 지적 겸손이 높은 사람들은 자신의 기존 신념과 일치하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이, 정보를 더 정확하게 처리하고 기억했다. 특히 자신의 견해와 다른 정보를 검토할 때는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여 신중하게 분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 논쟁적 주제에 대한 인지기억 실험
연구팀은 참가자들에게 동성결혼, 대마초 합법화 등 논쟁적인 주제에 대한 40개의 문장을 읽게 했으며, 각 문장은 해당 주제에 대한 찬성 또는 반대 입장을 담고 있었다. 이후 기존에 읽은 문장과 새로운 문장을 구별하는 테스트를 실시하고, 각 판단에 대한 자신감도 함께 측정했다.
그 결과 지적 겸손이 높은 사람들은 이전에 본 내용과 새로운 내용을 더 정확하게 구별해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이러한 능력이 자신의 견해와 일치하는 정보나 반대되는 정보 모두에서 동일하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특히 자신의 견해와 반대되는 내용을 읽을 때는 더 많은 시간을 들여 신중하게 검토했다. 이는 지적 겸손이 높은 사람들이 자신과 다른 관점도 진지하게 고려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참가자들에게 자신의 답변에 대한 확신 정도를 측정했다. 지적 겸손이 낮은 사람들은 틀린 답변에 대해서도 높은 자신감을 보였다. 반면, 정답을 맞췄을 때의 자신감은 지적 겸손 수준과 관계가 없었다. 이는 지적 겸손이 부족한 사람들이 자신의 실수를 인지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음을 보여준다.
2. 지식 판단을 위한 과대주장 테스트
두 번째 실험에서는 64개의 항목으로 40개는 실제 존재하는 개념이나 인물, 24개는 가짜항목을 섞어 제시하고 이를 얼마나 정확하게 구별하는지 측정했다.
지적 겸손이 높은 사람들은 실제 존재하는 것과 가짜를 더 정확하게 구별했다. 특히 이러한 경향은 참가자들의 교육 수준을 감안하고도 여전히 유효했다. 이는 지적 겸손이 단순한 지식의 양이 아닌, 지식을 다루는 태도와 관련이 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실험 결과들은 지적 겸손이 실제 정보 처리와 판단 능력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자신의 견해와 다른 의견을 검토할 때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다는 측면에서 잠재적 리스크를 조기에 발견하고 더 나은 대안을 찾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리더십 관점에서 리더가 지적 겸손을 키움으로써 더 정확한 정보처리 과정을 통한 의사결정과 균형 잡힌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따라서 리더는 자신의 지적 겸손 수준을 지속적으로 점검하고 개선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할 필요가 있다.
지적 겸손 실천을 위한 리더십 가이드
1. 의사결정의 질을 높이는 ‘생각하는 시간’ 확보
리더가 가장 먼저 실천해야 할 것은 ‘충분한 검토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급변하는 비즈니스 환경에서 빠른 의사결정도 중요하지만, 지적 겸손이 높은 리더는 중요한 결정일수록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상황에 따라 회의에서 바로 결정하기보다 “다음 주까지 각자 검토해보고 다시 논의하자”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2. ‘다름’을 존중하는 소통 문화 구축
반대 의견은 조직의 면역 시스템과 같다. 지적 겸손이 높은 리더는 특히 자신의 생각과 다른 의견에 귀 기울여야 한다.
“그건 안 될 것 같은데…”라는 말을 들었을 때,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더 자세히 설명해줄 수 있나요?”라고 물어보자.
이러한 태도는 팀원들의 심리적 안전감을 높이고, 더 나은 의사결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
3. ‘확신’을 경계하는 리스크 관리 체계 도입
과도한 자신감은 종종 큰 실수의 원인이 된다. 중요한 의사결정 전에는 반드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이 판단이 틀렸을 때의 리스크는 무엇일까?”를 질문해보자.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에 ‘프리모템(Pre-mortem)’ 세션을 통해 실패 가능성을 먼저 검토하는 것도 효과적이다
4. ‘다각적 검증’을 통한 의사결정 프로세스 구축
중요한 결정일수록 다양한 관점에서의 검토가 필요하다. 새로운 전략을 수립할 때는 데이터 기반 분석, 현장 실무진들의 의견 수렴, 외부 전문가 자문, 고객 피드백, 최종 의사결정 전 팀 회의 등 다양한 채널을 활용해서 데이터를 점검하고 신중한 의사결정을 진행해야 한다. 팀원들과 참여적 의사결정정을 할 땐 FOCUS 모델을 적용해보자.
지적 겸손, 일상에서 실천부터
불확실성이 높은 현대 비즈니스 환경에서, 지적 겸손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나도 틀릴 수 있다”는 인식은 역설적으로 더 나은 판단과 의사결정으로 이어진다. 리더의 확신에 찬 태도가 때로는 필요하지만, 그 확신은 겸손한 검토와 학습의 과정에서 나와야 한다. 연구가 보여주듯, 지적 겸손은 약점이 아닌 강점이며, 이는 실제 비즈니스 성과로 이어진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적 겸손은 “나도 틀릴 수 있고, 모를 수 있다”는 태도로 시작해 “우리 함께 알아가보자”는 자세로 발전시키려는 노력이 더 훌륭한 리더로 만들어 줄 것이다. 오늘 회의에서 한 번 더 물어보고, 조금 더 기다려주고, 실수를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보자.